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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 집은 페낭이고 도쿄에서 일하는 루슨(여권 미들네임)이 써 가는 블로그입니다. #Korea #Penang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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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1. 01:01 연일 정씨


​​연일정씨(延日鄭氏)의 역사

연일정씨(延日鄭氏)는 신라(新羅) 전신인 사로국(斯盧國)의 6부촌 중 취산 진지부(嘴山 珍支部)의 촌장 지백호(智伯虎)가 서기 32년(儒理王9年)에 유리왕으로 부터 다른 5촌장들과 함께 성(姓)을 하사받을 때 마을 이름이 본피부(本彼部)로 개칭되면서 정씨(鄭氏)의 성을 하사 받은 것이 시초이다.

연일 정씨(迎日鄭氏)의 시조인 정종은(鄭宗殷)은 정씨 성을 얻은 지백호(智伯虎)의 먼 자손으로 신라 때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지냈으며 김유신(金庾信)과 함께 삼국 통일에 공을 세웠다.

정종은(鄭宗殷)의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연일호장(迎日戶長)을 지내고 연일현백(迎日縣伯)에 봉해졌으므로 그 후손들이 본관을 연일(迎日)로 하였다.

■형양공파(榮陽公派)의 시조: 정습명
고려(高麗) 인종(仁宗) 때 추밀원 지주사(知奏事)를 지낸 형양 정습명(鄭襲明, ?~1151년)이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 또는 형양공파(榮陽公派)의 시조이다.

정습명은 고려 의종(毅宗, 1127~1173년)의 태자(太子)시절 스승이었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 편찬 감독관의 한 사람으로 김부식(金富軾), 김효충(金孝忠) 등과 함께 삼국사기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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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양공파 10세손(世孫): 정몽주
지주사공파(형양공파)의 가장 큰 인물은 포은 정몽주(鄭夢周, 1337~1392년)이다.

정몽주는 1360년 문과에 장원 급제한 고려의 충신(忠臣)으로 조선 건국(朝鮮建国)에 반대하다가 1392년(공양왕2년) 4월 이성계의 문병을 다녀오던 길에 개성 선죽교에서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아버지 이방원에게 살해되었다.

그뒤 1401년(태종1년)에 영의정(지금의 국무총리)에 추증(追贈)된다.

포은 정몽주의 자손은 포은공파(圃隱公派)가 된다.

■포은공파 20세손 항렬
정연◯(鄭然◯) - 울 아버지
형양공파 30세손

■포은공파 21세손 항렬
정◯교(鄭◯敎) - 나
형양공파 31세손

■포은공파 22세손 항렬
정의◯(鄭義◯) - 울 아들
형양공파 32세손

■포은공파 23세손 항렬
정◯수(鄭◯洙) - 울 손자
형양공파 33세손


전쟁에 족보가 유실되었다는데 이제 뿌리를 찾아보려 합니다. 근데 뭘부터 해야할지 몰라 역사부터 정리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잘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posted by 루슨
2014. 12. 7. 16:33 자녀교육


학창시절 다른 과목은 진학하는 데만 필요한데 국영수(国英数)는 평생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평생 도움이 된다고 해도 국어(国語)는 한글과 맞춤법만 알면되고 수학(数学)은 2차 방정식까지만 알아도 이공계열로 밥 먹고 살아 오면서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영어(英語)는 다릅니다.

그럼 영어가 왜 필요할까요?

좋은데 취직하려고? 자막 없이 헐리웃 영화 보려고? 가이드 없이 해외 여행 다니려고? 금발 아가씨 한 번 사귀어 보려고? 이건 좀 땡기네.. ㅎ

사람이 살아 가면서 가장 중요한 건 '선택'과 '문제 해결 능력'입니다. 수많은 선택을 통해 삶이 변화하고 진화합니다. 이 선택은 공부를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 그 사람의 의지와 직결됩니다.
그래서 성공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하나 봅니다.

그 '선택'을 위해선 판단력이 필요하고 정확한 판단을 위해선 '정보'가 필요하죠!
문제 해결 능력도 '의지'와 '정보'가 없이는 안 됩니다. 그리고 정보가 부족하면 제대로 된 판단이 힘듭니다.

이 중요한 '정보'를 한국어에 국한하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요즘엔 손 안에 세상의 모든 정보와 연결된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한민족 최고의 선물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도 외국어를 권장하셨습니다.

上曰, 外語欲習 華語是誠美事
임금이 말씀하시길, 외국어를 배우려는 마음과 중국어를 배우는 일은 실로 아름다운 일이다. (세종실록)

조선 초기에 사역원(司訳院)을 두고 역관(訳官)을 배출했는데 세종대왕은 사역원 내에서 조선말을 쓰면 곤장을 쳤답니다.

이순신 장군 집안도 5대조가 세종 때 조정에서 역관(訳官)을 지내 명나라와의 외교 전선에서 활약했다는 군요.

조선에선 외국과의 통역을 담당한 역관 중에 부자가 많았답니다. 외국과의 교류와 교역을 통한 정보를 활용해서 부를 축적합니다. 중국어(漢学)·만주어(女眞学)·몽골어(蒙学)·일본어(倭学)를 배우는 것이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었다는데 다만 당시 일본어는 활용 가치가 별로 없어 취업이 어려웠다죠.. ㅋ

저도 항상 영어에서 발목을 잡힙니다. 국제대회 한번 참석하면 다녀 온 뒤에 메일, 메신저, SNS 등으로 연락이 많이 오지만 이해하기도 번역하기도 귀찮아서 답장도 제대로 못 합니다.

운전을 못하면 운전사를 두면 되는데 자기 월급 챙기기도 힘든 사업하면서 영어권 출생 직원을 두기까지 꽤 많은 세월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웹엔지니어를 10년 넘게 한 저 보다도 3년 한 저희 캐나다 출생 직원이 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때 해결 능력이 더 뛰어납니다.
저는 한국어, 일본어로 검색하지만 그 친구는 영어로 검색하거든요.
한국어 자료는 아무리 뒤져도 없고 일본어는 간간히 있을 정도입니다. 발견하면 설명이 아주 친절하죠. 매번 일본어 배우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이건 비단 시스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이다. 얼마 전에 한국산 가전제품이 외국 쇼핑몰에서 구입하면 반값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항공권과 호텔 예약도 한글 사이트보다 영문 사이트에 저렴한 상품이 더 많습니다.

요즘은 동네 여관도 웹을 통해 해외 여행자를 유치하는 시대입니다.
도쿄 아사쿠사에 있는 한 여관은 손님이 한명도 없는 날을 3일 연속 보내다 해외로 탈출구를 찾아 지금은 해외 여행자 때문에 예약하기도 힘들답니다.

그런데 그 영어가 위상이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웹상의 정보는 중국어가 추월할 기세입니다.
2010년 조사에 의하면 영어 웹 사용 인구는 5억4천만으로 27.3%이고 중국어는 4억5천만으로 22.6%입니다. 중국 인터넷 보급율을 볼 때 5년 안에, 아니 이미 추월했는지도 모릅니다.

참고로 일본어는 1억명으로 5.0% , 한국어는 4천만으로 2.0%입니다.

당신의 자녀에게 세상의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2%만으로 살아 보라고 하시겠습니까? 손안의 스마트폰을 쥐고 같은 요금 내면서 2%도 활용을 못한다면 인생을 너무 낭비하는게 되지 않을까요?

저희 세대는 안 되는 머리로 책상에 붙어서 죽어라 외우기만 했는데 요즘은 기회가 많습니다.
기본 문법책 대충 한번 훌터 보고도 페이스북 등을 통해 많은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습니다. 문장 몇개만 외워도 대상이 많으니 활용 가치가 충분합니다. 심심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한테 말 걸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대화할 수 있는 어휘력과 소재가 늘어 납니다.

일례로 스마트폰 음성 채팅 기능을 활용해 18개 국어를 하는 고등학생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페낭(滨城)에서 유학하는 중고등학생들은 3개국어에서 5개국어를 기본으로 합니다.

제가 수업 이외는 책 한번 안 보면서도 SNS로 친구를 늘리며 중국어가 느는 비결입니다.

그 이외에도 스카이프 외국어 회화는 현지 교사와 스카이프로 연결해서 저렴하면서도 원하는 시간에 자기 집에서 맨투맨 학습이 가능합니다.

해외 연수나 조기 유학도 미국 케나다 보다 페낭(Penang in Malaysia)에 보내는게 저렴하고 자연 환경 및 생활 환경도 안정되었습니다. 게다가 수업을 영어로만 하는게 아니고 반은 중국어로 진행해서 기본 2개국어 학습이 가능합니다.

소설가 이병주(李炳注, 1921년~92년)씨는 하나의 외국어를 안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와 만나는 것이라 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는 건 그만큼 고난을 극복할 방법이 늘어 난다는 것이고 행복을 찾아 나설 길도 많아 진다는 뜻입니다.

posted by 루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