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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 집은 페낭이고 도쿄에서 일하는 루슨(여권 미들네임)이 써 가는 블로그입니다. #Korea #Penang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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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9. 6. 10:30 일상 日常/루슨 생각

오또-상
20년만에 펜을 듭니다.
아니 시대가 바뀌어 키보드인가요?
아니지 이젠 글을 쓸 때 스마트폰 액정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펜을 쓸 때도 키보드 칠 때도 간간히 기자 생활을 해서 표현이 좀 진부합니다.

제 유학시절 천하 고독 의지할 곳 없는 하늘 아래 유학 자금 빚지고 다음달 방세가 없어 주워다 고친 자전거 타고 한집 한집 아르바이트 구하냐고 물어 보고 다니느라 되지도 않는 일본말 할 때 찾아 와 주신 게 벌써 20년이 흘렀습니다.

찾아 오셔서 연락하라고 전화번호하고 전화카드 손에 쥐어 주시고 간 날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니 너무 자주 생각해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때 한국에 다시 돌아 갈까봐 그게 두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내 능력을 키우고 싶다는 욕망 밖에 없었는데 그 새로운 세상이 그리 박한 줄 몰랐습니다.

대학 들어 가는 것도 유학생은 보증인이 필요하다고 해서 전화 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시고 그 뒤로도..

20년 후에 갚으라고 하셨습니다.
매달 돈 보내 주신 거..

오또-상도 학자금 대출로 공부했다고 천천히 갚아도 된다고..

낳은 부모도 돈 한푼 안 보태는데 학비에 쓰라고 매달 꼬박꼬박.

그때는 머리 속이 멍했습니다.

대학 켐퍼스에선 이국인에 처자식 있는 나이 많은 후배인 제가 만든 봉사 클럽 사무실에서 외국인 유학생들하고 모두 수다 떠느라 시끄러울 때 저는 조용하고 전망 좋은 곳에 앉아서 오또-상 생각을 했습니다.

나한테 왜 이러시나?
어떻게 갚아야 하나..

살아 오면서 고민이 많아 일본 친구들한테 물어 보고 저희 엄니한테도 여쭤 봤습니다.
대답은 모두 받으려고 한 게 아니니까 안 갚아도 된다고..
질문은 돈을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가 아니였는데..

그래서 그때부터는 스스로한테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래서 그랬는지 타지에서 고생하는 유학생들 보살피고 도우면서 대학교에 봉사 클럽 만들어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았습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고 능력도 안 되지만 도쿄의 신생 국제 봉사단체 창립 맴버로 활동하면서 초년생인 제가 청소년 지원 사업 지구 임원까지 지내면서 노력했습니다.

오또-상한테 빚진 마음 갚으려고..

5년 전에 말레이시아로 떠나기 전에 찾아 뵀지요?
이젠 돈도 갚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아 갔습니다.

자주 찾아 뵙지 못 해 죄송하고
연락 드리지 못 해 죄송합니다.
제가 살아 오면서 마음이 너무 무거웠나 봅니다.

다른 이는 술 한잔 따라 주고 반갑게 맞이해도 자주 연락 드리는데 오또-상한테는 연락 드리지 못하고 생각에만 잠겼습니다.

제가 저희 아버지 제일 존경하는 것이 은혜를 잊지 않으신 다는 겁니다.

전 어렸을 때 명절 때마다 성묘 마치고 아버지 오른손에 댓병 청주를 그리고 왼손에는 제 손을 쥐고 아버지 외가 친척집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때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저분 덕에 우리집이 일어 났어. 사람은 은혜를 잊으면 안 된단다.”

그때는 엄니 설명이 더 이해하기 편했습니다.
“아니 그냥 준 것도 아니고 필요 없어서 우리한테 판건데 왜 그걸 매번 술 사 들고 찾아 가요?”

그때까지 아버지는 소를 키워서 논 농사하고 밭농사를 일구셨는데 아버지 외가댁 의사 아저씨가 경운기 팔아 줘서 그 뒤로 매년 땅을 살 수 있었답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은인도 제 은인도 모두 의사네요.

5년 전에 일본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3년을 중국어 배우며 중국 사업 준비했는데 잘 안되서 가족이 있는 말레이시아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지금까지 일본에서 납부한 연금을 일시불로 받으면 갚을 수 있을꺼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찾아 뵙고 연금 사무실에 갔는데 한국은 전액 돌려 주는데 반해 일본은 반 밖에 안 준답니다.
제가 한국에서 재외국민으로 PR여권 받을 때 전부 돌려 받은 경험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뵐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그런 계획이라도 없었다면 못 찾아 뵀을테니..

오또-상
돌아 보면 덕분에 제 인생이 윤택했습니다.
잠 못 자고 제대로 못 먹으며 뛰어 다녔어도 덕분에 빚진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 보고 챙길 수 있었습니다.

저희 아들도 직장 들어 가 안정된 생활에 안주하기 전에 부모 돈만 쓰는 것보다 세상에 빚지고 사는 게 아들 인생을 위해 더 도움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게 또 쉽지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을 쓰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지난 20년간 오또-상 생각하며 참았던 게 다 터지나 봅니다.

오또-상이 데려 가 주신 맛집에서 식사 마치고 헤어질 때 벤치에서 외국 나가도 몸 조심하고 잘 됐으면 좋겠다고 하신 말씀도 가끔 생각합니다.

꼭 건강하세요.

얼마 전 전화 목소리 듣고 안심했습니다.
코로나 터지고 계속 걱정했거든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고..

병원 신축하시고 아드님도 잘 하시는 것 같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에 마스크하고 일본에서 일반 사람들은 구하기 힘든 소독 티슈 챙겨서 보내 드렸습니다.
매년 뭘 보내 드릴까 생각만 하고 아직은 부끄러운 마음에 행동은 못 했는데 혹시 오또-상 없는 하늘을 지고 살까봐 덜컥 겁이 났나 봅니다.

친구 아버님이 6년 전 쯤 돌아 가셨습니다.
그집 딸이 제 후배하고 사귀어서 처음 인사 드리러 갈 때 후배 부탁으로 제가 통역으로 갔다가 친해졌습니다.
그 뒤로 찾아 뵐때마다 저를 숨겨논 아들이라고 농담하시며 아들처럼 대해 주셨습니다.

돌아 가시기 전에 문병 가려고 연락하니 오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나중에 들었는데 루슨한테는 내 건강한 모습만 기억에 넘겨 주고 싶다고..

장례식에 가고 3주기에도 참석했는데 가족석에 앉아서 왠지 저만 제대로 대화에 참가하지 못 했습니다.

모두 돌아 가고 역전 편의점에서 청주 사서 다시 되돌아 갔습니다. 그렇게 묘지 앞에 술잔 두개 놓고 펑펑 울고 나서 알았습니다. 그 동안 사요나라 그 한마디 못 했다는 걸..

가족들은 모두 떠나 보냈는데 그동안 제 맘 속에선 간직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날 비로소 보내 드렸습니다.

제가 오또-상을 평생 보내 드리지 못 하고 살게 하지 않으시려면 건강하게 오래 계세요.

호주에서 공부하던 우리 아들 이번 코로나 사태 맞아 외국 영주권자라 안 가도 되는 군대 보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공부도 제대로 못 할 뿐더러 앞으로 살아 갈 아들 인생을 위해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도 되는데 장손이니 할아버지가 백년을 살고 돌아 가시면 매년 술 한잔 따라 드려야 하니 대한민국 국적만은 버리지 말아 달라고 약속했거든요.

우리 아들 제대하면 같이 찾아 뵙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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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