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한국에서 태어나 집은 페낭이고 도쿄에서 일하는 루슨(여권 미들네임)이 써 가는 블로그입니다. #Korea #Penang #Tokyo
루슨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today
  • yesterday
2015. 1. 1. 15:52 일상 日常


【일본어】
新年、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신넨, 아케마시테 오메데토-고자이마스)

【중국어】
新年快乐。
(신넨 콰이러)

【프랑스어】
Bonne année.
(보나네)

【스페인어】
¡Feliz Año Nuevo!
(펠리쓰 아뇨 누에보)

【독일어】
Alles Gute fürs neue Jahr!
(알레스 구-테 퓌-어스 노이에 야-르)

【베트남어】
Chúc mừng năm mới.
(쭉 믕 남 머이)

【러시아어】
С Новым Годом!
(스노븸 고돔)

【이탈리아어】
Felice anno nuovo!
(펠리체 안노 누오보)

【태국어】
สุขสันต์วันปีใหม่ครับ.
(쑥싼완 삐- 마이 크랍)

【인도네시아어】
Semoga mendapat banyak keberuntungan di tahun baru.
(스모가 믄다빳 바냑 끄버르운뚱안 디 따훈 바루)

【몽골어】
Танд Шинэ оны мэнд хүргэе.
(탄뜨 신 언-이 멘드 후르기)

【아랍어】
نتمنى لك سنة جديدة سعيدة.
(나타만나- 라카 싸나툰 자디-다 툰 싸이-다)

【미얀마어】
နွစ္သစ္မွာ မဂၤလာ အေပါင္းနဲ႕ ျပည္႕စံုပါေစ!!
( 흐닛마 밍글라 아빵웅네 삐종바제)


(미얀마어는 기본 폰트가 없는 기기가 많아 이미지도 첨부합니다.)


서울보다 1시간 늦은 페낭에서도 신년을 맞이하여 여기 저기 불꽃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일상 日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개가 아프다  (0) 2017.03.31
낮술(昼酒)을 즐기는 주말  (0) 2015.01.07
한국에서 보내 온 인삼 어떻게 먹을까?  (0) 2015.01.03
베트남 커피 마시는 방법  (2) 2015.01.02
옛날 시골집에서..  (0) 2014.11.11
posted by 루슨
2014. 12. 22. 00:45 일본 日本/일본어 日本語


年越し蕎

의미: 12월 31일에 한 해를 넘기며 먹는 메밀국수
입력: toshi koshi soba
읽기: 토시 코시 소바

토시코시소바(年越しそば)는 12월 31일 밤에 먹습니다.
12월 31일이라고 하면 가족이 모두 모여 NHK 홍백전(紅白歌合戦)을 봅니다. 1951년에 시작해 올해가 65회째입니다. 매년 한류(韓流) 가수가 나와 즐거움을 더했는데 예전에 가카께서 갑자기 애국심이 솓구쳐 독도에 방문하신 덕분에 일본 우익에 힘을 실어 줘 자취를 감췄습니다.

역사의 피해자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본인 또는 가족이 그렇게 이 땅에 사는 분들은 그래도 조국이라고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교류가 늘어나고 한류가 사회 전반에 그 영향을 미치던 시기에는 북한에서 한국으로 국적을 변경하는 사람에, 숨기고 있던 한국 국적을 공개하는 연애인이 늘어 났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쓸데없는 짓(?)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시 되돌아 가서 12월 31일!
시청률 40%를 넘기는 NHK 홍백전이 23시 40분까지 방송하고 홍백(홍-女, 백-男) 어느쪽이 승리인지 발표합니다. 작년에는 백팀(白組)이 이겼습니다.

0시까지 남은 20분에는 소바(메밀국수)를 먹습니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기원하는 일종의 의식으로 0시 이전에 먹는게 좋다고 합니다.

0시가 되면 떨어져 있는 부모님과 가족 친지에게 전화로 인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새해 인사는 1월 1일 0시 이전까지

良いお年をお迎えください。
(요이 오토시오 오무카에 구다사이)
멋진 새해를 맞이하세요.

0시가 넘어 새해가 밝아 오면

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아께아시떼 오메데또- 고자이마스)
새해가 밝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입니다.

여러분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写真】 어묵(かまぼこ)이 면(麺) 아래 숨어서 단순해 보이는 소바입니다만, 누가 한국사람 아니랄까 봐 김치하고^^

'일본 日本 > 일본어 日本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商人について  (0) 2015.01.11
posted by 루슨
2014. 12. 19. 10:34 대한민국 大韓民国/한글
한글과 히라가나에 대해, 한국어와 일본어의 역사 그리고 한글과 히라가나의 공통점과 차이점으로 총 4편으로 나눠서 연재할 예정입니다. 한글과 히라가나를 설명하기 전에 두 문자가 표기하는 언어에 대해서 알아보고 역사적으로 한국어와 일본어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어 표기를 위한 한글과 일본어 표기를 위한 히라가나.
두 문자는 모두 각자 언어를 표기하기 위한 표음문자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비슷한 점이 많을 것 같지만 다른 점도 많은 두 문자를 비교하기 전에 우선 두 언어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한국어
한국어는 크게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한국어와 북조선에서 사용하는 조선어(문화어)로 나뉘어 불리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거주하는 교포들은 대부분 한국어를 사용하고, 중국의 연변과 헤이룽강(흑룡강) 등지에 분포하는 조선족과 일본에서 초·중·고등학교 및 대학교를 조선 학교에 다닌 사람은 조선어를 사용합니다. (불행히도 일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교포는 1세대 이외에 한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어와 조선어를 구별하기 위한 칼럼이 아닌데다 이렇게 서로 나뉘어 불리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편의상 "한국어"로 통일하겠습니다.


한반도 및 주변 지역에서 사용되는 한국어는, 한반도가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다가 통일된[각주:1]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으로 이어지며 형성됩니다. 신라가 한반도 남부를 통일하기 전에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의 말이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었는지 중국의 문헌을 통해 추측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 말의 유사성을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2편에서 다루게 될 일본어에 영향을 미친 백제와 고구려의 말과 신라 말의 관련성을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語言待百濟而後通焉. <양서 54 - 신라편>
“(신라의)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중국과) 통한다”

중국과 비교적 가까운 백제가 무역과 교류가 활발했는지, 신라 사람은 백제인의 통역으로 중국인과 대화할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言語服章略與高麗同. <남사 79 - 백제편>
“(백제의)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려(고구려)와 같다.”

고구려가 건국 후 얼마 후에 고려로 국호를 바꾸는데[각주:2] 통일 신라 이후의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우리는 그 이전 고려를 고구려라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 및 일본 문헌에는 대부분 고려로 등장합니다.
백제와 고구려의 언어와 복장이 같은 이유를 여기서 잠깐 두 나라의 건국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고구려 시조 주몽은 북부여의 난을 피해 졸본 부여로 간다. 그곳에서 이미 아들이 둘 있는 미망인 소서노와 결혼하고 고구려를 건국하는데 소서노의 경제적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찾아와 그를 태자로 세우니, 소서노의 두 아들이 백 호(戶)의 주민을 데리고 내려와 한강 유역에 세운 나라가 백제라고 하는 유력한 설이 있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은 소서노의 둘째 아들이다. 졸본 부여에 기틀을 마련한 고구려 그리고 그곳에서 내려와 세운 나라 백제의 지배 계층은 고구려와 같은 졸본 부여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 때문인지 백제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어에는 고구려의 단어가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또한, 신라와 고구려 말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거칠부 열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신라의 거칠부가 고구려의 가장 유명한 승려 혜량의 문하에 들어 설법을 들었는데 며칠 후에 혜량이 거칠부를 불러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때 혜량만이 거칠부가 신라 사람이란 걸 알았다. 이에 혜량은 "노승은 불민해도 능히 그대를 알아볼 수 있는데, 이 나라는 그대를 알아보는 자가 없다. 그대가 잡힐까 염려하여 은밀히 충고하니 빨리 돌아가라.” 하였다. 거칠부가 나중에 장군이 되어 백제의 동맹군과 고구려로 진격했을 때 혜량과 함께 서라벌로 돌아오니 진흥왕은 환대하여 승통으로 삼았다. 그 후 혜량은 불법(佛法) 포교를 비롯해 신라의 불교 발전에 공헌하게 된다.

이상에서 보이듯이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의 말은 통역이 없이도 소통이 자유로웠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알타이 어족
한국어의 어순은 주어(S) - 목적어(O) - 동사(V)로 알타이 어족(가설)에 속합니다.
이것은 일본어도 마찬가지인데 한국어와 일본어가 속해 있는 어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러시아의 서시베리아와 몽골, 카자흐스탄과 중국에 접해있는 알타이산맥에서 유래한 "알타이"라는 말은 우랄 어족을 연구하던 핀란드의 문헌학자 마티아스 카스트렌에 의해 처음 붙여졌습니다.
카스트렌이 제안한 우랄알타이 어족에 대한 연구가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진행되었으며 한국에서도 과거 교과서에 "한국어는 우랄알타이 어족"이라고 명시되기도 했는데, 20세기 후반에는 언어학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게 됩니다.



퉁구스어·몽골어·투르크어로 이루어진 알타이 어족의 가설은 언어 사이의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습니다.

- SOV 어순, 즉 주어-목적어-동사의 어순을 가진다.
- 교착어이다.
- 모음조화가 있다. 또는 과거에 있었다.
- 두음법칙이 있어 어두에 특정 자음이 쓰이지 않는다.
- 부동사(converb)가 있다.
- 모음교체, 자음교체가 없다.
- 문법적 성(gender)이 없다.
- 대개 유기음이 없었다.

한편, 유라시아 어족 가설로는 퉁구스어·몽골어·투르크어와 별도로 한국어·일본어·아이누어를[각주:3] 하나의 어족으로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이상에서 보이듯이 한국어와 일본어는 같은 어족으로 언어 사이의 연관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2편 "일본어"에서는 일본어와 히라가나의 역사 그리고 고대 한국어와의 연관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정진교 (일본 특파원)

ⓒ 온한글

출처: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모든 것, 온한글
원문: 닮은 듯 틀린 한국어와 일본어 비교 1탄
블로그 기자했을 때 작성한 기사입니다.
  1. 같은 시기에 북쪽에 있던 발해는 200여 년간 존재했어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는 정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언어적으로도 별 영향이 없을 것 같아서 제외한다. [본문으로]
  2. 3세기에 쓰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고구려"로, 5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중원고구려비에는 "고려"로 표기되어 있다. [본문으로]
  3. 일본 북부 홋카이도와 러시아 사할린 남부 등지에서 거주하는 아이누족이 사용하는 언어. "아이누"는 아이누어로 "인간"이란 뜻으로 문자는 없고 현재 일본어 가타카나와 알파벳으로 기록하고 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언어와 문자를 소개하는 옴니글롯(Omniglot)에 한글로 표기한 아이누어 소개 페이지(http://www.omniglot.com/writing/nuye.php)가 있다. [본문으로]

'대한민국 大韓民国 > 한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글과 히라가나 비교 2편 - 일본어  (0) 2014.12.16
posted by 루슨
2014. 12. 16. 16:20 대한민국 大韓民国/한글
1편에서는 한국어의 역사 그리고 한국어와 일본어가 속해 있는 알타이 어족(가설)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일본어의 역사와 고대 한국어와의 관련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일본어
일본과 외국에서 사는 일본인 그리고 일본계를 포함해서 대략 1억 3천만 정도의 인구가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팔라우[각주:1]의 안가울 주(州) 공용어로 일본어가 법률[각주:2]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공용어에 관한 규정이 없고 다만 재판소법 74조에 "재판소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일본은 4세기에서 7세기까지 일본 영토를 지배한 최초의 통일 정권인 야마토(大和) 시대에 야마토 고토바(言葉, 언어)가 있었는데 한자가 전래한 이후에 중국 그리고 백제와 고구려의 음과 단어가 포함되기 시작합니다.

한국어에서 표기를 대부분 한글로 하는 것에 비해 일본어는 히라가나가 있는데도 대부분의 표기를 한자에 의존합니다. 그럼 여기서 일본어의 한자와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자의 전래
한자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각국에서 이체(異體)가 쓰이다가 6국의 하나인 진나라가 통일하면서 화폐, 도량형과 함께 문자도 통일합니다. 진나라 승상 이사가 주나라 때 만들어진 대전을 개량하여 소전이라는 글씨체를 정리하는데,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지 15년 만에 망하고 유방이 이끄는 한나라가 다시 중국을 통일하면서 한나라(漢)의 글자(字)로 한국과 일본에 전래합니다.

대륙과 접해있는 한반도는, 한나라의 7대 황제인 무제(재위 BC141~BC87년) 때 위만 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함으로 인해 한나라의 문화가 유입되면서 한자가 전해집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유입된 시기는 중국의 남조와 수나라 그리고 당나라를 거치면서 문화가 융성한 시기(6~7세기)였다는 게 정설입니다.

일본에 한자가 전해진 시기로는 712년에 편찬된 고사기(古事記)의 오진기(應神記)편에 백제에 관한 기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百濟國 若有賢人者貢上 故 受命以貢上人名 和邇吉師 即論語十卷 千字文一卷 并十一卷付是人即貢進
백제에 만약 현인이 있다면 헌상하라는 오진 천황의 명을 받아 (백제에서) 온 사람의 이름은 와니길사[각주:3]라고 한다.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아울러 11권을 헌상했다.

고사기에 붕어(崩御) 연도가 393년으로 기록되어 있는 일본 15대 오진천황 때의 일입니다.
아직 일본에는 말(馬)이 없었는데 백제에서 말을 가져와 돌보는 아직기가 경전을 잘 읽으니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천황이 아직기에게 백제에 그대보다 나은 학자가 있는지 물어, 왕인이 그렇다고 하니 사신을 보내 왕인을 불렀습니다. 그때 왕인이 논어(유교)와 천자문(한자)을 가져와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천자문은 5세기 중국 남조의 양무제 때 편찬됩니다. 아무래도 이후에 가져온 사람과 같이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부터 백제를 통해 유교와 한자가 전해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일본어의 한자를 읽는 방법
일본어에는 한자를 읽는 방법이 여러 가지인데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여 군요미(訓讀)와 온요미(音讀)가 있습니다.
한국어로 예를 들면 "水"는 뜻(訓)이 "물"이고 음(音)이 "수"가 됩니다. 한국어에서는 음으로만 읽지만, 일본어는 뜻으로 읽기가 군요미, 음으로 읽기가 온요미입니다. "水"를 예를 들면 군요미로 "미즈", 온요미로 "수"라고 읽습니다.

여기서 군요미는 야마토시대에 존재한 야마토 고토바로 읽는 방법인데 우리나라에도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 사용하던 이두(향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두에 대해서는 3편 한글과 히라가나의 공통점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한자를 음으로 읽는 일반적인 방법이 온요미입니다. 한국어에 한자를 읽는 음이 2가지 이상인 것으로는 否(아닐 부, 막힐 비) 更(고칠 경, 다시 갱) 樂(즐길 락, 노래 악, 좋을 요) 등의 일자다의(一字多義)가 다수 존재하지만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고 나머지는 대부분 음이 한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일본어의 온요미는 많으면 7가지 이상인 것도 있습니다.

그 종류를 살펴보면 오(吳)나라 발음의 오음, 한(漢)나라 발음의 한음, 당(唐)나라 발음의 당음 그리고 관용음으로 분류됩니다. 오음은 오나라와 가까운 백제를 통해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그 이후에 한음과 당음이 각각 전해집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변형된 것이 관용음입니다.

이것은 해상로를 통해 섬나라 일본으로 전해집니다. 문화 발전이 늦었던 일본은 항해술도 낙후되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백제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일본은 백제와 어떤 관계였을까요?

백제와 일본의 관계
신라에 망한 백제는 기록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일본 측 기록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문화재 발굴을 통한 고증으로 점차 밝혀지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동경(銅鏡)의 발굴입니다.

1971년 백제의 25대 무령왕(재위 501∼523)의 무덤에서 동경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것이 일본 16대 닌토쿠(仁德, 재위 313~399) 천황 무덤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거울은 천황 3종 신기(神器 - 구슬, 검, 거울)에 하나로 예로부터 신성시되었습니다. 같은 틀이 아니지만 거의 흡사한 두 문화재를 통해 우리는 문화 교류를 넘어서 더욱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개최되기 한 해 전인 2001년 12월 23일 아키히토(明仁)천황은 68세 생일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桓武天皇の生母は百済の武寧王の子孫であると『続日本紀』に記されていることに韓国とのゆかりを感じています。
간무 천황의 생모는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에 한국과의 연고(緣)를 느끼고 있습니다.

기자 회견 당일 MBC 보도 내용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001년 아키히토는 68세 생일의 기자 회견에서 천황의 모계 혈통이 백제계라는 사실을 이례적으로 언급했다. 아키히토 천황은 자신의 선조의 간무 천황의 어머니인 다카노노 니가사(高野新笠)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속일본기의 내용을 인용했다. 속일본기는 793년 당시 간무 천황이 펴낸 역사서로 간무 천황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직계 후손인 화씨(和氏)부인이라고 적고 있다. 아키히토 천황은 또 무령왕 당시부터 일본에 5경 박사(五經博士)가 대대로 초빙됐으며 무령왕의 아들 성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해 줬다고 말했다.

이는 백제 왕실과 일본 황실이 혈연관계였다는 사실입니다. 백제의 지배층은(1편에서 살펴봤듯이) 고구려와 같은 부여민족입니다. 그래서 일본에는 백제를 통해 고구려의 말이 전해집니다.

고구려어와 일본어
고대 한반도는 부여에서 나라를 세운 고구려 그리고 백제 지배층의 북방계와 삼한에서 유래한 신라, 가야 그리고 백제의 피지배층인 남방계로 분류합니다. 신라가 3국을 통일하면서 신라 말이 이어져 현대 한국어가 형성되었다는 게 통설입니다. 북쪽에서는 고구려 사람이 주체가 되어 발해가 건국되지만 다시 소멸하면서 고구려 말은 사라집니다. 그런데 일본어에 고구려 말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고구려어와 일본어는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그 관련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03년 5월 6일 뉴욕타임스[각주:4]에 실린 기사입니다.

The Science article endorses a bold suggestion for the origin of Japanese. The writers say it is derived from the language of rice farmers who arrived from Korea around 400 B.C. and spread their agriculture northward from a southern island, Kyushu. Modern Japanese is not at all like Korean. But Korea had three ancient kingdoms, each with its own language. Modern Korean derived from the ancient Sillan. Japanese may have evolved from another ancient Korean language, Koguryo, the article says.

미국 UCLA 자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박사와 호주 국립대 피터 벨우드(Peter Bellwood) 박사는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Farmers and Their Languages: The First Expansions)에서, 일본어는 기원전 400년경 한반도에서 일본 남부 규슈(九州)로 건너와 벼농사를 짓고 이 농경법을 일본 북부로 확산시킨 농경민 언어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럼 이제 고구려어와 일본어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오사함은 황해도에 있는 토산[각주:5]이란 지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구려 때 이 지역은 오사함달현(烏斯含達縣)으로 신라가 이 지역을 정복한 이후 토산현으로 개칭합니다. 조선 중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이 지역에 토산이 있었다고 합니다. 토산은 토끼산을 말합니다. 오사함달의 오사함(烏斯含)은 토끼, 달(達)은 산을 뜻하여 토끼산이 있는 고을이란 뜻입니다.

이외에도 고구려어와 일본어의 유사성은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발음의 변화에서는 현재 일본어 발음으로 설명했을 때 내물 - 내무루, 단 - 탄·타누, 밀 - 미루, 덕 - 토쿠 등과 같이 자음에서는 "ㄴ" 이외의 받침과 모음에서는 "ㅓ"와 "ㅡ" 발음이 없는 일본어에서는 변화가 많이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고구려어는 삼국사기를 비롯한 서적에 기록된 인명, 지명, 관명 등으로 대부분 어휘에 국한되는데다 100단어를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을 비롯해 일본에서도 고구려어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한국어와 일본어의 역사와 관련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본격적으로 한글과 히라가나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온한글 블로그 기자단 1기 정진교 (일본 특파원)

ⓒ 온한글

출처: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모든 것, 온한글
원문: 닮은 듯 틀린 한국어와 일본어 비교 2탄
블로그 기자했을 때 작성한 기사입니다.
  1. 인구 2만 명 정도의 태평양 서남부에 있는 작은 섬나라. [본문으로]
  2. 법률적으로 공용어라고는 하나 현재는 사용 인구가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 [본문으로]
  3. 고사기(古事記)에는 와니(和邇)로 일본서기(日本書記)에는 와니(王仁)으로 기록되어 있다. 길사는 백제의 인명에 붙이는 존칭이다. [본문으로]
  4. 뉴욕타임스 기사 원문 http://www.nytimes.com/2003/05/06/science/06LANG.html [본문으로]
  5. 현재는 황해북도 토산읍. [본문으로]

'대한민국 大韓民国 > 한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글과 히라가나 비교 1편 - 한국어  (0) 2014.12.19
posted by 루슨
2014. 12. 7. 16:33 자녀교육


학창시절 다른 과목은 진학하는 데만 필요한데 국영수(国英数)는 평생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평생 도움이 된다고 해도 국어(国語)는 한글과 맞춤법만 알면되고 수학(数学)은 2차 방정식까지만 알아도 이공계열로 밥 먹고 살아 오면서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영어(英語)는 다릅니다.

그럼 영어가 왜 필요할까요?

좋은데 취직하려고? 자막 없이 헐리웃 영화 보려고? 가이드 없이 해외 여행 다니려고? 금발 아가씨 한 번 사귀어 보려고? 이건 좀 땡기네.. ㅎ

사람이 살아 가면서 가장 중요한 건 '선택'과 '문제 해결 능력'입니다. 수많은 선택을 통해 삶이 변화하고 진화합니다. 이 선택은 공부를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 그 사람의 의지와 직결됩니다.
그래서 성공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하나 봅니다.

그 '선택'을 위해선 판단력이 필요하고 정확한 판단을 위해선 '정보'가 필요하죠!
문제 해결 능력도 '의지'와 '정보'가 없이는 안 됩니다. 그리고 정보가 부족하면 제대로 된 판단이 힘듭니다.

이 중요한 '정보'를 한국어에 국한하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요즘엔 손 안에 세상의 모든 정보와 연결된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한민족 최고의 선물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도 외국어를 권장하셨습니다.

上曰, 外語欲習 華語是誠美事
임금이 말씀하시길, 외국어를 배우려는 마음과 중국어를 배우는 일은 실로 아름다운 일이다. (세종실록)

조선 초기에 사역원(司訳院)을 두고 역관(訳官)을 배출했는데 세종대왕은 사역원 내에서 조선말을 쓰면 곤장을 쳤답니다.

이순신 장군 집안도 5대조가 세종 때 조정에서 역관(訳官)을 지내 명나라와의 외교 전선에서 활약했다는 군요.

조선에선 외국과의 통역을 담당한 역관 중에 부자가 많았답니다. 외국과의 교류와 교역을 통한 정보를 활용해서 부를 축적합니다. 중국어(漢学)·만주어(女眞学)·몽골어(蒙学)·일본어(倭学)를 배우는 것이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었다는데 다만 당시 일본어는 활용 가치가 별로 없어 취업이 어려웠다죠.. ㅋ

저도 항상 영어에서 발목을 잡힙니다. 국제대회 한번 참석하면 다녀 온 뒤에 메일, 메신저, SNS 등으로 연락이 많이 오지만 이해하기도 번역하기도 귀찮아서 답장도 제대로 못 합니다.

운전을 못하면 운전사를 두면 되는데 자기 월급 챙기기도 힘든 사업하면서 영어권 출생 직원을 두기까지 꽤 많은 세월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웹엔지니어를 10년 넘게 한 저 보다도 3년 한 저희 캐나다 출생 직원이 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때 해결 능력이 더 뛰어납니다.
저는 한국어, 일본어로 검색하지만 그 친구는 영어로 검색하거든요.
한국어 자료는 아무리 뒤져도 없고 일본어는 간간히 있을 정도입니다. 발견하면 설명이 아주 친절하죠. 매번 일본어 배우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이건 비단 시스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이다. 얼마 전에 한국산 가전제품이 외국 쇼핑몰에서 구입하면 반값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항공권과 호텔 예약도 한글 사이트보다 영문 사이트에 저렴한 상품이 더 많습니다.

요즘은 동네 여관도 웹을 통해 해외 여행자를 유치하는 시대입니다.
도쿄 아사쿠사에 있는 한 여관은 손님이 한명도 없는 날을 3일 연속 보내다 해외로 탈출구를 찾아 지금은 해외 여행자 때문에 예약하기도 힘들답니다.

그런데 그 영어가 위상이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웹상의 정보는 중국어가 추월할 기세입니다.
2010년 조사에 의하면 영어 웹 사용 인구는 5억4천만으로 27.3%이고 중국어는 4억5천만으로 22.6%입니다. 중국 인터넷 보급율을 볼 때 5년 안에, 아니 이미 추월했는지도 모릅니다.

참고로 일본어는 1억명으로 5.0% , 한국어는 4천만으로 2.0%입니다.

당신의 자녀에게 세상의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2%만으로 살아 보라고 하시겠습니까? 손안의 스마트폰을 쥐고 같은 요금 내면서 2%도 활용을 못한다면 인생을 너무 낭비하는게 되지 않을까요?

저희 세대는 안 되는 머리로 책상에 붙어서 죽어라 외우기만 했는데 요즘은 기회가 많습니다.
기본 문법책 대충 한번 훌터 보고도 페이스북 등을 통해 많은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습니다. 문장 몇개만 외워도 대상이 많으니 활용 가치가 충분합니다. 심심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한테 말 걸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대화할 수 있는 어휘력과 소재가 늘어 납니다.

일례로 스마트폰 음성 채팅 기능을 활용해 18개 국어를 하는 고등학생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페낭(滨城)에서 유학하는 중고등학생들은 3개국어에서 5개국어를 기본으로 합니다.

제가 수업 이외는 책 한번 안 보면서도 SNS로 친구를 늘리며 중국어가 느는 비결입니다.

그 이외에도 스카이프 외국어 회화는 현지 교사와 스카이프로 연결해서 저렴하면서도 원하는 시간에 자기 집에서 맨투맨 학습이 가능합니다.

해외 연수나 조기 유학도 미국 케나다 보다 페낭(Penang in Malaysia)에 보내는게 저렴하고 자연 환경 및 생활 환경도 안정되었습니다. 게다가 수업을 영어로만 하는게 아니고 반은 중국어로 진행해서 기본 2개국어 학습이 가능합니다.

소설가 이병주(李炳注, 1921년~92년)씨는 하나의 외국어를 안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와 만나는 것이라 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는 건 그만큼 고난을 극복할 방법이 늘어 난다는 것이고 행복을 찾아 나설 길도 많아 진다는 뜻입니다.

posted by 루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