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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 집은 페낭이고 도쿄에서 일하는 루슨(여권 미들네임)이 써 가는 블로그입니다. #Korea #Penang #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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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8. 00:59 중국 中国/역사 歴史

오늘은 예측(予測)에 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측에 관해서는 가을이 될 때마다 떠오르는 일엽지추(一葉知秋)란 말이 있습니다.

山僧不解数甲子 一葉落知天下秋
'산승불해수갑자'이나 '일엽락지천하추'라

산속의 중이 속세는 모르지만 낙엽 한 잎 떨어지는 걸 보고 천하에 가을이 온 것을 아는구나. 당나라(唐) 때 시(詩)의 한 구절입니다.

선견지명(先見之明)은 정보의 분석(分析)과 과감한 결단력(決断力)의 산실입니다.

IMF를 경험하고 주식 동향을 지켜보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는 투자해도 손해 볼 일이 없더군요. 주식 투자 1전 1승..ㅎㅎ

칠래(Chile)의 지진 해일(津波)이 일본까지 오는 걸 보고 지반 튼튼하고 바닷가에서 먼 곳에 집을 장만했습니다. 마쿠하리(幕張)가 최고의 주택지라고 그쪽으로 오라던 친구는 동일본 대지진 때 지반이 가라 앉아 헐값에 팔려고 내 놔도 사는 사람이 없답니다.

예측에 관해 역사적으로는 이이(李珥)의 10만 양병설이 있습니다만, 성공한 예측으로는 춘추 전국시대 범려(范蠡)의 旱則資舟 水則資車(한즉자주 수즉자차)가 있습니다.

범려는 월나라 사람으로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오나라 손무(孫武)의 라이벌이었습니다.

'가뭄에 배를 준비하고 홍수에 수레를 준비하라'

사실 이는 계연(計然)에게서 배웁니다. 범려는 계연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부국강병(富国強兵)을 이루고 월왕(越王) 구천(勾践)을 전국시대 마지막 패자(覇者)의 자리에 올려 놓습니다.

대업을 이룬 후에 범려는 월나라를 떠납니다. 자기가 떠날 때라고 과감히 결단한거죠. 한신(韓信)은 항우한테서 뺏은 천하를 유방한테 들어 바치고도 지지리 궁상 떨다 여자 손에 죽었잖아요. 이런 으바리..ㅎㅎ 삼황오제부터 역사에 통달하고 지략이 뛰어나면 뭘 합니까. 지 앞가림도 못 하는걸.. ㅠㅜ

범려의 결단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름을 바꾸고 제나라(斉)에 가서 큰 돈을 법니다. 명성이 자자해 지자 그의 비범함을 알아 본 제나라 조정에서 그를 부르니 모은 돈을 나눠 주고 또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도(陶)라는 작은 나라에 가서 장사를 하는데 이번에는 도주공(陶朱公)이란 이름으로 또 한번 천하에 이름을 떨칩니다. 도주공은 청나라(清) 말기 호설암(胡雪岩)과 더불어 중국에서는 상신(商神)으로 모시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화교(華橋)들 가게에 가면 범려의 초상을 종종 볼 수 있답니다.

어제 지난 결산 서류 정리하다가 집에 관한 서류가 나와서 보니 주택 구입 전 6개월간 수집해서 분석한 자료들이더군요. 건축가 자문, 그 지역의 역사 및 인근 지역 향후 개발 정보, 유사 물건들을 직접 엑셀로 작성한 은행 담보 능력 비교 분석 자료, 인근 지역의 주민 민원 상황 그리고 새벽 밥 먹고 가 집 앞에서 회사까지 출근 시간 체크한 자료도 있습니다..ㅎㅎ

무엇보다 일본 버블 붕괴 후에 디플레이션이 진행되는 상황을 몇년간 분석 해 보니 앞으로는 손해 보지 않겠더군요. 요즘 아베노믹스가 화재입니다. 20년간 잠자던 일본 땅 값이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외국자본이 도쿄의 건물들을 사들이는 뉴스가 심심치 않습니다.

올해 서비스를 착실히 준비하면 아베노믹스가 효과를 발휘하던 잠깐 버블이건 내년에는 일본사람 주머니에 돈을 넣어 줄테니 그걸 노릴 수 있지 않을까 예측 해 봅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페낭(槟城)과 중국 광저우(广州) 진출을 위한 분석과 결단이 틀리지 않았기를 바랄 뿐입니다.

* 제 글에 나오는 한자 성어들은 원문의 의미에 충실하면서도 이해하기 편하게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2013. 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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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식과 조조(曹操)의 이해  (0) 2014.11.17
posted by 루슨
2014. 11. 17. 10:53 중국 中国/역사 歴史

대륙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삼국지(三国志)의 영웅 조조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조조는 나관중(羅貫中)이라는 저작거리 소리꾼에 의해 사실과 다르게 평가 된 부분이 많습니다.

제가 첫 이야기를 조조로 시작하는 건 존경하는 리더이기도 하지만 역사 인식과 객관성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가고 싶어서 입니다.

초한연의(楚漢演義)는 픽션의 형식을 빌었지만 사기(史記)를 바탕으로 한 사마천(司馬遷)의 역사 의식과 객관적 붓체(필체)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렇지만 삼국연의(三国演義)는 동 시대를 산 진수(陳壽)가 정리한 삼국지를 바탕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뻥이 너무 심합니다.

나관중은 붓 한번 잘못 놀렸다가 사대부 집안에서 쫒겨납니다. 호적에서도 빠질 정도니 잘못을 무지했나 봅니다.
그 뒤로 먹고 살려고 저작거리로 나섭니다.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주고 연명하다 보니 사람들이 즐거워할 만한 이야기로 풀어 가야 했습니다. 삼국연의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의 연속인 이유입니다.

당시 시대적 배경도 작용합니다. 한족(漢族)이 아닌 이민족이 지배한 원나라(元朝, 14세기) 말에 한나라의 정통인 유비(劉備)를 중심으로 한 삼국지 이야기가 한족의 세상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평안하게 했던 시기였습니다.

역사(歴史)를 논할 때 100년이 지나야 제대로 된 객관적 해석이 나온다는 건 이해 당사자가 모두 죽어야한다는 이치일텐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역사는 시대와 이해하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튼 그런 이유에서 신분에 상관없이 인재를 등용하고 건안 문학(建安文学)을 발전시켜 정치와 병법 그리고 문학에서도 빼어난 능력을 발휘한 한 시대의 영웅 조조에 비해 황실의 빽으로 실권을 잡고 한 황실의 부흥을 위한 명분에서 결국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유비가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됩니다. 조조는 죽어서 추증되었지 살아 생전에는 황제의 자리를 넘보지 않았습니다.

나관중은 역사가가 아닌 상상력(?)과 글재주가 뛰어난 소설가로 평가해야 합니다.

사실 동남풍도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아닌 나관중의 붓 끝에서 만들어 지고 적벽대전(赤壁大戦)의 모티브가 된 것도 명 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의 파양호 대전(鄱陽湖大戦)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적벽대전의 기록을 다 모아도 한 페이지를 채우지 못합니다.

한일(韓日) 그리고 한중(韓中) 관계가 협력과 동반자로 미래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풀어야 할 역사 문제가 산재 해 있습니다.
그걸 무작정 "내꺼니까 내꺼지 이유가 필요해?", "독도에선 한국 휴대폰이 터지잖아?" 등의 무대포적인 인식과 일방적으로 상대를 비난하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꼭 인식해야 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조의 시 한 구절 올립니다.

단가행(短歌行)

対酒当歌 人生幾何 대주당가 인생기하
술이나 들고 노래나 하세 인생 얼마나 된다고

譬如朝露 去日苦多 비여조로 거일고다
이슬처럼 사라진 지난 날의 많은 고통이

慨当以慷 憂思難忘 개당이강 우사난망
슬프고 원통해서 근심을 잊을 길이 없구나

何以解憂 唯有杜康 하이해우 유유두강
무슨 수로 떨쳐버릴까 오직 술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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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未来)를 예측하자  (0) 2014.11.18
posted by 루슨
2014. 11. 15. 17:30 일상 日常/와인 Wine

​여름 내내 맥주하고 얼음 넣어 위스키만 마시다가 찬바람 불고 와인 셀러에 전원을 켰습니다.

나흘 연휴 기간 동안 일만 하다가 마지막 날인 어제 저녁에 친구 불러 간만에 와인 한 잔.. ㅎ

이탈리아 바르바레스코(Barbaresco) 2008년산

즐겨 마실 뿐 아직 와인 맛은 잘 몰라서 프랑스 레드 와인 위주로 마시는데 어쩌다 이탈리아 와인을 샀습니다.

바르바레스코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2년의 숙성 기간 중에 1년은 오크통에 숙성해서 생산한답니다. 그래서 인지 강렬하지 않고 부드러워 레드 와인에 익숙하지 않은 이도 편하게 마시기 좋겠는데요.. ㅎ

친구가 있어 와인이 좋을까요?
와인이 있어 친구가 좋은걸까요?


posted by 루슨
2014. 11. 14. 21:01 해외여행

1989년에 해외 여행이 전면 자유화되고 부터 '배낭여행'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처럼 해외도 목적지를 스스로 정해서 움직일 수 있게 된거죠.

지금까지는 여행사를 통해서 할인 항공권을 알아 보거나 투어를 검색하고 항공권도 우편으로 받거나 하는 귀찮은 단계를 거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저가 항공사도 많이 생기고 사이트나 어플을 통해 곧바로 비교 검색해서 직접 예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난 6월에 늦잠자고 일어나서 한국 가고 싶어 예약하고 점심은 공항에서 저녁은 한국에서 먹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 가능했습니다.

【항공권 예약】 Skyscanner、Airasia
투어가 아니고 본인이 코스 정해서 움직이고 싶으면 항공권은 스카이스케너가 좋습니다. 저가 항공사를 포함해서 날짜와 노선별로 시간과 금액을 비교할 수 있어 편합니다.
특히 저렴한 경유노선 이용시 편리합니다. 제가 베트남 출장 때 타이페이 경유해서 하루 숙박하며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즐기는 이유입니다.

【호텔 예약】 Agoda、Expedia
호텔은 여행 가기 전에 미리 예약하는 것 말고도 어플을 이용하면 본인이 위치한 장소 근처의 방이 있는 호텔을 찾아 시설과 요금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5월에 싱가폴 갔을 때 카지노에서 밤 새려다 피곤해서 근처 게스트하우스 찾아 새벽 3시에 체크인 했답니다. 2층 침대 4개 있는 여행자들 방에서 6시간 쉬고 나왔습니다.

이번 연말연시 예약도 마무리되어 갑니다.

東京(Tokyo) ⇒ 大阪(Osaka) ⇒ 南京(Nanjing) ⇒ 澳門(Macau) ⇒ 香港(Hongkong) ⇒ 吉隆坡(Kuala Lumpur) ⇒ 滨城(Penang) ⇒ 上海(Shanghai) ⇒ 東京(Tokyo) and 仁川(Incheon)、釜山(Pusan)

아직 항권권 3개 호텔 1곳만 예약하면 되지만 언제든 예약 가능한 것들만 남겨 두었습니다.

참 세상 편해졌습니다. ㅎ

posted by 루슨
2014. 11. 13. 18:05 타이완 台湾

형제(兄弟)의 나라에서 혐한(嫌韓)으로 바뀐 이유가 뭘까요?
타이완(台湾)을 대만 또는 자유 중국으로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줄 압니다.

'대만'은 1986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6장 외래어 표기가 개정되기 전에 쓰던 표기 방법입니다. 개정 전에는 인명 및 지명을 우리말 한자음으로 사용하다 개정 후 외래어 본래 발음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예를들면 '북경(北京)'이 '베이징'으로 불리게 된 계기입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살아 오면서 바뀌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지우펀(九份)에서도 심천(深圳)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한국 여자분이 장국영(張國榮)을 설명하는데 '장궈룽'이라는 중국어 발음을 몰라 자살 표현하느라 자기 목을 조르더군요.. ㅎ 저도 언제나 홍콩 배우 얘기 나오면 고생 좀 합니다.

'자유 중국'은 중화 인민 공화국을 중국 공산당 즉 중공(中共)으로 부르다가 수교를 맺고 중국(中国)으로 인정하기 시작할 시기 부터입니다. 타이완이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하는 유일한 '중국'이었는데 중공과 수교하고 부터 자유 중국(自由中国)이란 명칭을 사용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1992년 뉴스에서 타이완 사람들의 배신감과 절규의 눈물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아이고~ 이눔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ㅠㅜ"

때는 바야흐로 김구(金九) 선생님 시대로 흘러 가 보겠습니다.
쑨원(孫文)과 그 뒤를 이은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国民党)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는 1960년대에 두번이나 쑨원에게 건국 훈장을 수여합니다.

당시만 해도 장제스의 국민당이 중국 본토에서 가장 큰 세력이었습니다. 공산당과 손잡고 일본을 몰아내는 사이 공산당을 키운 꼴이 되었죠. 그 바람에 타이완으로 쫒겨나도 대한민국은 타이완을 유일한 중국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중공과의 수교 조건이 타이완과의 단절이었는데 일본이 제일 먼저 중공과 수교(40년 전)를 맺습니다. 우리나라는 타이완과의 관계를 생각해 나름대로 배려했는 데도 마지막(20년 전) 배신감이 가장 컸을까요?

우리와 달리 타이완은 일본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인지 일본 사람도 많고 어딜가나 일본 말로 걸어 옵니다. 저는 매번 "我是韩国人 쩌쓰 한꾸어런"을 강조해야 했습니다.

저녁에 지룽 야시장(基隆廟口夜市) 포장마차에 앉아 해산물에 맥주 한 잔하는데 저만 앉은 테이블에 타이완 사람들이 빙 둘러 앉더군요. 못 앉은 분이 계셔서 다른 테이블로 옮겨 앉았더니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日本人吗 르벌런 마?"
아니라니까!!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지들끼리 쭝얼 쭝얼 하데요.. ㅎ

제가 대한민국 이미지를 조금은 좋게 바꿔 놓은거 맞죠? ㅋ

【写真】 혼자서 궁상 떨고 있다가 글이나 쓰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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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石客棧] 자신을 찾아 떠난 여행  (2) 2014.12.09
posted by 루슨
2014. 11. 13. 15:36 일상 日常/루슨 생각

한국문화가 외국과 많이 다른, 나이에 관해 생각 해 볼까합니다.
우선 가장 차이를 느끼는건 나이 계산법입니다. 흔히 한국 나이라고 말을하는데 우리나라만 특이한걸까요?

한국의 나이 계산법은 중국의 영향이었는지 동아시아에 널리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문화 대혁명,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 일본은 메이지시대, 북한도 현대에 들어 와 만 나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답니다.
한국식 나이 계산법이 일본에 아직 남아있습니다. 만 나이에 비해 한두살이 많다보니 좀 더 오래 사셨다는 의미에서 돌아가신 분에게만 사용한답니다.

우리나라도 법적으로는 만 나이를 사용하는데 일상에선 아직 못 버리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우리문화에 나이가 계급화되어 버렸습니다. 나이든게 자랑이 되어버려 나이를 숨기는 여성도 자기가 나이 어린 사람취급 받는건 싫어하죠.

명심보감(明心宝鑑) 준예편(遵礼篇)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孟子 曰 朝廷엔 莫如爵이오
郷党엔 莫如歯요
輔世長民엔 莫如徳이니라

맹자가 이르기를, 조정엔 벼슬만한 것이 없고
마을엔 나이만한 것이 없고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데는 덕만한 것이 없느니라.

한국사람이 우선 나이부터 까고 편하게 대한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오해도 생기고 오히려 불편한 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 선배건 후배건 나이가 만건 적건 서로의 신뢰가 쌓여 편해지기 전까지는 모두에게 경어를 사용합니다. 직원들 나이도 모릅니다.

우선 나이로 상대를 판단하기보다 상대의 특징이나 장점, 배울점을 먼저 찾는게 유익하리라 봅니다.

본인도 기억해 내기 싫은 나이를 안 가르쳐 줬다고 화 내시는 카친이 계셔서 정리 해 봤습니다. 덕분에 출근길 지하철에 갖힌 시간을 유익하게 보낸 느낌!^^

posted by 루슨
2014. 11. 11. 11:03 일상 日常/루슨 생각

"김치가 뭐예요?"
아마 이런 질문을 받아 본적도, 해 본적도 없으실 겁니다. 이런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줄 압니다.

김치가 뭘까.. 저도 한글 가르칠 때 비로소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김치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沈菜"
침몰한 야채 즉 야채 소금 절임을 말합니다.

김치하면 대표적으로 떠 오르는게 배추(白菜), 고추가루(唐辛子), 젓갈(塩辛)이죠?
그러나 배추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게다가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신대륙에서 발견됨)에 일본에서 들어 오고 젓갈 역시 나중에 첨가된 재료입니다.

김치의 원조는 야채의 화석으로 불릴만큼 역사가 긴 오이로 추정합니다. 배추는 옛 중국 문헌에 강북에서 키우면 뿌리가 건실하고(무) 강남에서 키우면 잎이 부드럽다(배추)고 했습니다.
같은 종이었다는 얘긴데 얼갈이 배추와 열무를 보면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흔히 김치가 중국에서 들어 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만주(満州) 벌판을 오랜 터전으로 삼았던 고구려(高麗)가 일찌기 절임과 발효 기술이 발달되었다고 합니다.

예를들어 콩(大豆)의 원산지 만주에서 기원한 된장(味噌)이 중국 문헌에 高麗臭 즉 고려의 냄새로 기록되어 있답니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란 노래가 있었죠!
저도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이라 언제나 김치를 냉장고에 채우고 삽니다.. ㅎ

퇴근 길 엄니가 앞치마 두루고 김장 도와주시는 아버지 사진을 보내 주셔서 몇 자 적어 봤습니다.. ㅎ

posted by 루슨
2014. 11. 11. 10:59 일상 日常

우리집 마당 끝에 해를 향해 15도 정도 기울어진 평상 같은게 있었어.
고추를 말리려고 만든 것 같아.

갑자기 천둥이 쳤는지 엄니하고 비닐을 들고 뛰어 갔어. 엄니는 그 비닐로 말린 고추를 덮고 난 중계방송을 하고 있었지.

"엄마 소나기가 잰고기를 넘었어."

"엄마 건너말까지 왔어."

"엄마 차동이네까지 왔어."하는 순간
엄니는 다 덮으셨는지 월남치마를 휘날리며 집으로 뛰어 들어가셨는데, 난 두 다리가 짧다 보니 불가능을 눈치채고 평상 밑에 숨었어.

잠시 후에 비가 그치고 볕이 나더라고 지금처럼..

점심 먹으러 나오는데 비가 오데요.
다시 자리로 가서 우산 가져 와 페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사이에 바지가 다 젖었습니다.
치즈야키 치킨 스테이크를 먹는 동안 그새 볕이 들었더군요.

밖으로 나와 갑자기 생각 난 아련한 추억..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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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루슨
2014. 11. 8. 00:15 일상 日常/루슨 생각

국민학교 6학년 2학기 말 무렵에 도시(하남시)로 이사했습니다.
전기도 없는 초가집 호롱불 밑에서 태어난 저에게 도시란 별천지 같았죠.

서울에 왔을 때 흙 없이 돌로 뒤덮인 길을 보며 마냥 신기해 했는데.. ㅎ

도시에 와서 알았습니다.
우리집이 부자구나..
고기를 먹을 수 있구나..

저는 워낙 채식을 좋아해 절 밥에 대한 향수는 있어도 고기에 대한 애착은 없었지만 동생이 한 말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돼지고기를 원없이 먹었으면 좋겠다.'
'통닭이 날아 간다.' 등.. ㅎ

시골에서는 마을에서 돼지를 잡거나 명절 전에 엄니가 읍내 나가서 사 오실 때나 가능했습니다. 소 도살은 불법이라서 소고기는 명절 아니면 못 먹었죠 아마..

아무리 시골이라고 해도 다른집은 우리 같지 않았는데 우리 엄니 손에 돈을 쥔 걸 본적이 별로 없습니다. 주로 소쿠리나 호미가 들려 있었죠.
돈은 아버지가 매년 땅 사시느라 계약하러 가기 전에 현금 다발을 허리에 차는 것 밖에 못 봤으니까요.

그래서 직장을 다니고 부터 엄니한테 매일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돈 세게 해 드린다고 입 버릇처럼 얘기했는데 아직도 그렇게는 못 해드리 있습니다.. ㅠ

그런 제가 도시에 와서 상가에 '신장개업'이라고 붙어 있는 글씨를 처음 봤습니다.
시골에서 대문에 붙은 '입춘대길'만 보다가 신장개업은 도시에 와서 경험하는 새로운 모든 것 중에 하나였습니다.

근데 하루는 희한한 걸 봤습니다.
천호동에 갔는데 어느 상가에 '신장개업' 문구가 붙어 있는 겁니다.

아니 왜?!
여긴 천호동인데 신장 개업??

당시 제가 살던 곳은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 신장리(현재 하남시 신장동) 부근이었습니다.

posted by 루슨